요한복음 8장 1-11절 “빛으로 오신 예수님 II” 12월 10일 주일 설교

12/10/2017
김영훈목사

 

여러분에게 질문을 드리며 시작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빛으로 오신 것을 믿습니까? 빛으로 오셔서 저희들을 구원하신 것을 믿습니까?  모두다 아멘이십니까?

그렇다면 다른 질문을 드립니다. 여러분은 어두움 이셨습니까? 죄인이였음을 인정하십니까?

또 다른 질문을 드릴텐데요 본문을 얘기하며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본문을 보며 생각할때 여러분이 이곳에 계셨다면 누구였을 것 같습니까? 바리새인, 서기관, 돌로 치러 하던 사람들, 아니면 간음해서 잡혀온 여인?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마 다른 사람은 다 말해도 간음해서 온 여인이라고 말하는 분은 별로 없을것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세인들에게 끌려 나온 간음한 여인을 보며 저들은 마음 속으로 도덕적 우위를 가졌을 것입니다. 나는 저기 끌려 나온 여인과 같지 않다. 난 의롭지만 저 여인은 율법에 명시된 대로 죽어 마땅하다… 저들은 율법에 나온 대로 돌을 들고 예수님이 돌로 치라는 말씀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생각은 다르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의로우신 예수님께서 보실 때는 돌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나 그 여인을 끌고온 사람들이나 간음한 여인이나 별 다를 바 없는 죄인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고소하고 누가 누구를 판단한단 말인가? 모두다 죄인임을 하나님께서 선포하신다는 것입니다. 모두다 어둠속에 있어서 그들은 자신들이 죄인임을 깨닫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오로지 예수님이 그들의 빛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어두움이라고 고백하고 죄인이라고 고백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돌러 치러 하던 사람들에게 그리고 간음해서 잡혀온 여인에게 무어라고 말씀하시고 싶은 것입니까?  너희들은 서로 죄가 없고 판단하나 모두다 죄인이다. 너희중에 죄없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오늘 본문에서 나온 여인보다 더 낫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습니까?! 여러분과 저는 이 간음하다 잡힌 여인보다 더 낫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구원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과 저 또한 똑같이 시커먼 어둠이였습니다. 장님이였습니다. 시궁창에 빠져 있던 죄로 물들어져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계속해서 6장 부터 15장까지 예수님은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 즉 나는 생명의 떡이요, 세상의 빛, 양의 문, 선한목자, 부활이요 생명, 길, 진리, 생명,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시며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갈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몇 가지 반복되는 말씀이 있는 것을 또한 확인해야 합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이 구절을 기억하십시오.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이 말씀은 24절에 다시 나옵니다,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이 말은 우리가 죄를 행하다가 죽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죄값으로 죽고, 내가 지금 죄가 누적되어서 그 속에 파묻혀 죽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죄라는 것이 먼저 있고, 그 속에 우리가 파묻혀 있고, 그것에 붙잡혀 있고, 그 가운데서 출생하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옳은 일도 하고 그른 일도 하는 존재들이 아니라, 이미 죄 아래 붙잡힌 노예들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너희가 선을 행하며, 의를 행하며, 무슨 대의명분을 든다고 할지라도 너희가 만들어 내는 것은 죄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너희의 뿌리가 그렇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예수에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인간의 근본 뿌리에 대한 얘기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뿌리가, 그 속성이, 본질이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나고, 죄 아래 있다는 것을 성경이 가장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은 온통 이 이야기로 그 후렴을 이루고 있습니다.

32절에 이르러서 그들은 죄와 선을 선택해서 가지는 것이 아니라 죄밖에 지을 수 없다는 지적을 하고 계십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32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34절)

너희는 죄가 그 본질이고 그것 외에는 할 수 없는 자들이니라는 지적으로 말씀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 이후에 지적하시기를, ‘너희는 너희의 아비가 죄인이고 거짓말장이며 살인한 자이기 때문에 너희도 거짓말쟁이고, 살인밖에 할 줄 모른다. 너희 뿌리가 그렇고 종족이 그렇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로부터 자유한다 함은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만일 우리가 선택한다면, 죄에 빠져서 하나님으로부터 도망하는 것을 자유로 착각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죄의 본능 때문입니다.

“나는 내 아버지께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38절)

이 말씀에서도 그 족보를 따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한다“고 할 때에 ‘아버지’는 누구입니까? 곧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킵니다. 또한,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한다”고 할 때에 ‘너희 아비’는 누구입니까? 41절에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하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또, 44절에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나라” 그러므로 여기서 ‘너희 아비’란 마귀를 말합니다.

47절에서는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47절 말씀을 명심해서 보셔야 합니다. 안 들어서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에 말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런 결과 저런 결과 즉, 결과를 만드는 자들이 아닙니다. 결과는 항상 자명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근본부터 하나님 편이 아닌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요한복음 8장의 핵심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영적으로 어둠이었고 장님이였음을 인정하며 고백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어둠이였고 시궁창이였고 장님이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에 하나님의 그 사랑이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생활보다 오히려 내가 믿어 줬는데 내 인생은, 내 삶은 이 모양 이꼴입니까? 하고 늘 하나님께 보상을 받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을수 있는 것이 얼마나 기적이고 놀라운 일인지 너무나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기 성경이 말하는 것은 예수님을 안믿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믿는 것이 이상한것입니다. 믿는 것이 그래서 기적이라는 것이다.  빛이 와도 왕이 와도 창조주가 와도 못알아 보는데 저희들은 어떻게 알아보았냐는 것입니다.

믿게 된 사실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 부족합니다. 예수를 믿는다 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불가능한 일 중 불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으로서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내가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우리를 섬기셨기에 무지하고 소경이던 우리가 고침을 받아 영안이 열려 빛을 보게 되고 깨닫게 되고 알게 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은 너무도 감격스런 기적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이 사실에 대하여 허술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이미 믿는 자가 되었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결과 사람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안 믿는가에 대하여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빛을 본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는 이 사실을 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기적이요, 혁명이요, 불가사의한 일일 것입니다. 이것은 상상할 수 없는 기적과 축복 속의 새로운 탄생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들의 위치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야 하는 사회는 어둠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고 소금임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아직도 어둠이기에 누가 더 오래 참고 용서하며 양보하야 하겠습니까? 눈을 뜬 자입니다.

우리에게 희생이 따라야 하고 빼앗겨야 하고 우리가 더 많이 고생하고 수고하고 밤잠을 자지 못하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실패했거나 약해서가 아닙니다. 오로지 보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세상에서 당하는 우리의 대적들이요, 환난들입니다. 그것을 회피하고 싶어서 짐짓 눈감은 자처럼 나도 장님이다 하면서 편한 자리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신 그 빛의 길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예수님의 죽으심이 실패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세상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우리가 당하고 있는 환난들, 어려움들, 참아야 하는 것들로 인해 우리가 졌다고 억울해 합니다.

그게 신자들이 살아 있어야 하는 가장 큰 사명입니다. 그 일을 외면하면 안됩니다. 빛을 증명 받아야 되는 사람들 속에 이제 간신히 시력을 회복한 사람들이 섞여 있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내어 주시므로 만들어 내신 빛으로 어두 웠던 세상을 이제 환하게 밝히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어둠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며 죽음은 더 이상 우리를 위협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비쳐진 그 찬란한 빛으로 말미암아, 어둠과 죽음은 모두가 생명의 빛 속으로 흡수되어 그 속에 지녔던 독소들은 빠져나가고 이제는 새로운 생명이 그 안에 깃들이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이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 안에 모십시오.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따라 나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빛 가운데 거하면서 놀라운 생명의 역사를 체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빛의 열매인 선함과 정의와 진실함을 이룩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제 항상 빛 가운데 거하여 늘 승리하시는 여러분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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