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9장 1-12절 19-23장은 마태복음의 다섯 번째 이야기 단락을 형성합니다. 네번째 단락인 18장까지 예수님의 사역 현장은 갈릴리 였습니다. 이제 19장 이후 예수님의 사역 현장은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여행길과 예루살렘으로 바뀝니다. 고난과 죽음의 장소인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의 가치와는 철저히 다른 가치관을 갖게하기 위해 일화들과 비유를 통해 가르치십니다. 오늘 본문은 바리새인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아내를 버려도 되느냐 이혼을 해도 되느냐 하면서 당시 권세를 잡고 있는 왕이 한 짓을 정죄 했을 때에 나타날 정치적 결과를 기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한이 죽은 것 같이 예수님도 잡혀가 죽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4절 부터 보면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지니라. 하시면서 예수님은 창조 질서에 근거하라. 즉 모든 존재와 가치와 원칙을 세우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유대인 사회에는 이혼 문제에 관하여 자기네들 사이에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강경파는 아내가 부정을 행하지 않는 이상 헤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파였고 온건파는 그 남편의 아내가 맘에 안 들면 내어 쫓을수 있다고 하는 두파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음행한 연고 없이는 내어 버릴수 없다고 했습니다. 8절에도 나와 있듯이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그렇게 만들지 않으셨는데 인간은 범죄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른 만한 실력이 없게 됨을 설명합니다. 그래서 모세가 허락한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죽고 못사는 열심을 가지고 결혼한 사이라도 한 평생을 지켜내지 못하는 것들이 죄인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족한 죄인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찾아 오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죄 아래 있습니다. 모든 인류가 죄의 썩어짐에 종노릇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라는 고급하고 존귀하고 신령하고 거룩한 회복을 허락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복됨과 그 존귀한 것들로 인하여 우리는 이제 중생하고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 자신의 존재 가치나 또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지켜내는 차원에서 더러움과 비겁함과 무지함과 부패함 같은 데서 돌아설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혼자사는 것에 대해 예수님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 질서를 세우신 것은 남녀가 부부가 되는 것이며 혼자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뜻하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택함을 받는 자만 그렇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방법처럼 예수님이 희생하고 나누고 사랑한것 처럼 그리스도인들도 남을 위해서 손해보고 희생하고 우리가 죽어서 다른 사람이 이익을 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겐 아직도 죄성이 있어서 날마다 말씀가운데 서지 않으면 언제라도 쓰러지는 지고 죄 가운데 사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견고히 셔서 하루를 넉넉히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