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장 3절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에 팔복에 대해 좀더 함께 나누기를 바랍니다.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팔복은 우리의 노력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복이나 성품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구원하신 자녀들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은혜의 선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고 축복입니다. 그래서 팔복에 나와 있는 복들은 세상적이거나 경제적인 유익의 축복이 결단코 아닙니다. 이 팔복들은 하나님 나라의 자녀들이 경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임재, 구원, 회복, 친밀한 관계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팔복 중에 처음으로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하십니다. 마태는 ‘심령이 가난한 자’로 기록하고 누가는 심령을 빼고 그냥 ‘가난한 자’로 기록합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마태와 누가가 다르게 기록하고 해석한것 같지만 “가난하다”는 말을 구약에서 보면 물질적 뿐만 아니라 영적인 의미가 다 포함된 표현이기 때문에 누가는 가난한자로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난 자체가 복이 아니라 가난이 가지고 있는 특성 때문에 가난한 자중에 어떤이들은 그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을 깨달아 낮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해 구원을 바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이 구절을 메시지에 이렇게 쓰셨습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너희는 복이 있다. 너희가 작아질수록 하나님과 그 분의 다스림은 커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마음 즉 심령이 가난한 마음은 절대로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고는 하나님 앞에서 가난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고는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지도 않고 그 어떠한 그리스도의 성품,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존 스토트 목사님은 “가난한 자”를 이렇게 정의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는 어떠한 상황에 있던지 하나님께 그들의 믿음과 소망을 둔 경건한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자녀들은 즉 천국의 백성들이 된 자들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며 겸손히 믿음과 소망안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미 도래케 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에게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머무시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