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장 4절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라고 말씀하십니다.
애통하며 슬피 우는 자들이 복이 있습니까? 이 세상은 우는 것이 지는 것이고 우는 것이 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애통하는 것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애통은 무슨 애통을 말합니까?! 자신의 더럽고 추악하고 악날한 죄로 말미암아 애통하며 우는 자를 말합니다.
죄로 물든 이 세상은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자랑하고 자신의 죄와 연약함은 숨기는 세상입니다. ‘죄’라는 것은 교회에서도 말하기 싫어하고 듣기 싫어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겉모양만 그럴듯하고 형식적이라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봉사를 하면 의로운 사람인 것처럼 포장된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분들이 집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것이 훨씬 길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루 하루가 따분하고 지루해서 시간을 보내기에는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그것 만큼 재미있는 시간이 없을 것입니다.그 드라마를 보면서 그 주인공들의 삶에 대해 같이 안타까워 하며 슬퍼하며 많이 울기도 합니다.
드라마를 보면서는 많이 울며 주인공들과 함께 슬퍼하였는데 자신의 죄의 대하여 애통하며 회개를 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으로 자신의 죄로 인하여 애통한 적이 있으셨습니까?
애통하는 자가 왜 복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무엇인지 우리의 악함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여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죄를 짓고도 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죄를 보고 죄라고 말하고 자신들이 얼마나 죄 가운데 빠져 있는지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알게 하시고 회개 할 수 있는 자리로 인도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애통하는 자가 복된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위로를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로 인하여 애통하는 자들에게 그 더럽고 추악한 죄를 예수님께서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저희들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의인으로 신분을 바꿔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한 애통함은 부끄러움과 수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축복이고 하나님께서 위로를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통하는 자리에서 감사와 찬양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애통하는 자’는 단지 개인의 슬픔과 죄만을 표현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 애통하는 마음은 타인을 위해, 세상을 위해 갖은 마음입니다. 죄로 인한 애통함은 삶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삶의 변화를 맛볼 것이며, 그로 인한 기쁨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진심으로 자신의 어두움을 보고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그 어두움 안에서 빛 되신 하나님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천국의 백성들에게 애통하는 마음을 주셔서 회개하게 하시며 또한 위로 하셔서 오늘도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경험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닮아가게 인도하심을 잊지 마시고 오늘도 감사와 찬양과 소망 가운데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