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7장 1-6절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비판 즉 판단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요한 복음 7장 24절을 보게되면 예수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합니다.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 또한 잠언 17장 15절을 보면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사람은 다 여호와께 미움을 받느니라.” 라고 나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성경의 말씀이 상반된 것 같지만 예수님은 2절에서 이 비판에 대한 설명을 하시면서 우리가 하는 비판은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고 자신들의 생각과 경험을 통해 속단하고 짐작하고 판단하기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비판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판이라는 단어 자체는 정죄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식별하다, 옳고 그름을 구분하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문제 삼으신 것은 비판 자체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비판의 정당하지 못한 ‘기준과 태도’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의 완전한 균형 속에서 헤아리시고 판단을 하시지만 사람의 판단은 자기는 지극히 관대한 자비의 잣대로 헤아리지만, 남은 칼날같이 예리한 공의의 잣대로 비판을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의 허물에 대해서는 최대한 이해하고 용서하며 변호하는 반면 남들의 허물은 최대한 용서하지 않고 비난하고 정죄하며 심판를 하는 것이 잘 못 된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처럼 정당하지 못한 판단의 기준과 태도를 지적하시고 먼저 자신을 돌아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5절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눈을 들여다 보면 그 안에는 독기가 넘쳐나고 그 목구멍에서는 온갖 더러운 악이 흘러 나옵니다. 다른 이들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이들은 실상 자신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자들이며 자신에 대한 깊은 불만과 정죄가 있는 것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고 하지만 실상은 하나님 없이 자신에 근거하여 살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 진정한 평화와 안식이 없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이 아니라 늘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죄인들입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것 처럼 이리저리 두루 다니며 남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이며 자신들이 죄인인 것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눈 속에 들보가 있는 줄도 모르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이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비방하고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에게 아무리 바른 길 즉 거룩한 길을 제시해 주고 진주 같은 조언을 해 주어도 그들은 그런 것을 수용하지 안할 뿐만 아니라, 자기는 추호도 잘못이 없다는 완고한 마음으로 버티며, 오히려 앙심을 품고 보복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 분별하여 신중하게 대처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잠 9장 8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산상 수훈을 통해서 계속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여 주시고 계십니다. 비방하고 비판하여 자기를 증명하며 자기의 영광을 위해 살지 말고 이제는 ‘더 나은 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의 자녀 답게 하나님을 닮아 사랑하며 섬기며 하나님 아버지처럼 온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금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이 말씀을 통해 자신의 들보를 보며 회개하시고 오늘도 한 걸음 더 하나님께 나아가시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한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