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와 나눔

Title묵상 마태복음 18장 21-35절2020-09-30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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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장 21-35절

당시 랍비들은 형제가 죄를 지었을 때, 3번까지는 용서할 수 있지만 4번째는 용서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정해 놓으면 4번째 부터는 마음의 갈등 없이 용서를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을 알고 베드로는 그 것 보다도 더한 인간이 베풀 수 있는 최대한의 용서를 생각하며 예수님께 용서를 일곱 번까지 하면 괜찮은지 물어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고 대답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대답은 491번째 부터는 용서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무한히 용서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비유를 통해서 무한히 용서해야 하는 이유를 말씀해 주십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이 그 주인 되는 임금으로부터 그 빚을 탕감 받았습니다. 큰 기쁨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가 기쁨 속에 돌아가다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났는데 임금이 자신의 빚을 탕감해 준 것처럼 다른 이의 빚을 탕감해 주지 않고 오히려 용서치 않고 그 자를 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이런 광경을 목격한 다른 종들이 몹씨 민망하여 임금에게 고하고 임금은 몹시 진노하여 이미 탕감 받았던 사람을 다시 불러 들였고 그를 옥에 가두어 버린 것입니다.

한 달란트는 육천 데나리온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들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일만 달란트는 6천만 데나리온입니다. 현재의 가치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을 10만원으로 계산한다면 일만 달란트는 6조원입니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돈입니다. 그런데 그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자가 가서 자기에게 일백 데나리온을 빚진 자를 용서하지 않아서 그것을 듣고 임금이 다시 그를 잡아 가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진정한 용서는 용서를 낳는다는 얘기 입니다. 임금앞에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용서, 그것은 마치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여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자리에서 구원함을 얻은 것과 같습니다.

주님은 이 일만 달란트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용서가 얼마나 큰 것인지 설명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아무런 조건 없이 용서하시고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죄의 노예로 악을 행하고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었던 그런 위치, 그런 성품, 그런 속성에서부터 하나님의 속성으로 회복하신 것입니다. 그 속성은 뭐냐면 용서하는 속성입니다. 자비를 베푸시는 마음을 가지신 우리 하나님의 성품을 부여받는 자리로 온 것입니다. 이것이 이 비유의 핵심입니다. 네가 남을 용서하지 않는 것은 네가 용서함을 받지 못한 표라는 뜻입니다.

예수 믿는 가장 고귀한 감격이 뭐냐하면 인간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 짓는다 안 짓는다 이런 흑백 논리의 기준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고귀하며 신의 성품으로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된, 인격의 경지가 무엇인가를 누리는 것입니다. 용서하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가 큰 죄인들인 저희들을 먼저 용서하여 주셨으므로 용서하며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참다운 자녀라면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닮아 용서하며 감싸주며 나눠주며 희생하며 섬기며 산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내가 갇히게 됩니다. 빚진 자를 가두었지만 사실은 자신이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증오와 분노의 벽에 내가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하는 것은 참으로 힘듭니다. 랍비의 가르침이 오히려 예수님의 가르침 보다 더 좋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그 크신 용서함을 알고 경험하였다면 다른 이들을 용서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희들을 먼저 용서해 주시고 사랑해 주셔서 저희들 또한  용서와 사랑을 할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오늘도 더욱더 하나님을 닮아 용서와 사랑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