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와 나눔

Title묵상 베드로전서 2장 18-25절2020-04-28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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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2장 18-25절 

 

베드로전서 2장 18-19절에,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이런 말씀은 주인의 입장에서 들으면 당연한 말씀이지만 노예의 입장에서 보면 절망과 분노를 일으킬만한 말씀입니다.


로마인들은 전쟁과 노예무역을 통해 상당수의 노예들을 확보했습니다. 당시 로마에는 약 6,500만 명가량의 노예가 있었으며 로마 시에만 65만 명의 노예가 있었는데 이는 로마시민의 네 배나 되는 인구였습니다.

기록에 보면 노예 학대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노예가 심부름을 약간 늦게 했다는 등의 아주 사소한 이유로 주인은 노예에게 3백 대의 매질을 가할 수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몸치장을 돕던 여자 노예가 여주인의 발밑에 거울을 떨어트려 깨트렸을 경우, 그 노예는 양손을 잘리는 벌을 받았습니다. 주인이 자신의 노예에게 살해당했을 경우에는 그 집안의 모든 노예를 남김없이 사형에 처하도록 하는 법률도 있었습니다.


‘글래디에이터’라는 영화에 자세히 소개된 대로 로마인들은 특유의 호전성과 잔인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예 검투사들은 죽을 때까지 서로 싸우게 하며 그것을 보고 즐겼습니다. 그런 잔인한 로마 시대에 태어난 것도 억울하고, 더군다나 로마인이 아닌 노예로 사는 것도 억울한데 까다로운 주인을 만나 학대를 받더라도 ‘순복하고 살라‘는 말씀은 노예들에게 복음이 아니라 저주로 들릴 수가 있습니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잘못을 해서 책임 추궁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선을 행하다가, 의를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불신자들에게는 해당이 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당시 비천한 신분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었던 성도들에게 한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고난의 본을 보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잘 참으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제국의 핍박 속에서도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영혼의 구원’으로 인해 확신과 기쁨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의 기쁨을 조금이라도 맛 본 성도들은 이런 분명한 확신과 어떤 박해도 이길 수 있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특권으로 여기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몇달안되어 세상이 뒤집힌 것 같습니다. 병으로 인해 많은 분들이 두려워하고 아파하고 있으며 비즈니스 또한 너무나도 힘들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상황속에서 하나님은 없으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과 모욕을 당하시고 죽임을 당할실때도 하나님은 어디에도 계시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세상이 이긴 것과 같이 느껴지고 예수님은 실패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실패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당하신 그 고난과 모욕과 죽음을 통해서 구원을 이루시고 새 생명을 저희들에게 주셨습니다.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이유도 모르게 그리고 우리가 원하지도 않는데 이러한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그리고 악과 질병이 우리를 삼켜 버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21절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목적은 예수님의 고난과 모욕과 죽임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이 세상에서 편안하게 그리고 부자로 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화해이며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거룩한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부르시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자리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은혜 성도 여러분, 많이 힘드시고 어려우시고 두려우시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지 않는 것 같지 느껴지시죠?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고 통치자이십니다.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위하십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을 바라보시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오늘도 주안에서 견고히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