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와 나눔

Title묵상 마태복음 10장 34-42절2020-08-2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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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장 34-42절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어제 함께 나눈 말씀 중에 12절을 보면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고 명령하신 말씀과 요한복음 14장에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상충된 말씀 처럼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고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화평은 무엇입니까? 유대인들이 기대하고 원하는 화평과 평화는 로마제국의 속국에서 벗어나는 평화를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나라와 나라간에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전쟁과 싸움이 없는 평화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화평은 마땅히 “땅 위에 평화를 주시러 온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참된 화평과 평화는 하나님과의 화평과 평화를 말합니다. 모든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고 지금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싫어 하고 싸우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참된 평화는 하나님과의 관계, 즉 죄인의 자리에서, 사망의 자리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 가운데 사는 자들은 이제 비로소 죄를 거부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잃어 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며 하나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거룩한 삶을 살려고 할 때 죄인의 길, 즉 이 세상의 가치와 충돌하여 우리는 싸울 수 밖에 없는 자리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원리는 자신이 왕이 되어 그 욕심에 근거하고 살고 있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싸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평화의 왕을 따르는 자들과 그를 거부하는 자들 사이에는 이처럼 긴장과 투쟁 그리고 분열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오셨다는 예수님의 선언은 이런 의미에서 매우 역설적이지만 필연적인 선언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면 부모와 자식이 싸우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주시는 화평은 이 가족 관계를 깨뜨리는 것 그 자체는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소원하는 것과 믿지 않은 자가 소원하는 것은 충돌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세상의 것으로 우리의 보물을 삼지 않고 목표와 내용을 삼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역설적으로 세상과의 투쟁을 수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고 제자로 사는 자들은 부모와 자녀에 대한 애착을 택해서는 안되고 메시아께 대한 충성심을 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칫 예수님의 이 교훈은 제자가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해서는 안된다는 식으로 오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금하시는 것은 가족을 사랑하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가족에 대한 충성심이 예수님께 대한 충성심을 능가하는 것을 말합니다. 제자는 예수님의 요구와 가족의 요구가 충돌되었을 때 언제든지 예수님의 요구를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자는 예수님께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충성심의 충돌의 가장 심각한 형태는 제자 자신에게서 나타납니다. 곧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과 예수께 대한 충성심의 충돌입니다. 이 충돌 현상에 대해 예수님은 매우 역설적인 원리를 제시합니다. “자기 목숨을 찾는 자는 그것을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그것을 찾을 것이다.” 이 역설적 원리에서 주목할 점은 ‘나를 위하여’와 ‘자기 목숨’ 사이의 긴장입니다. 자기 목숨을 최우선 순위로 두는 자는 예수를 위한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에 반해 예수님을 위해 충성심을 바치는 제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께 대한 충성심과 자기 자신에 대한 충성심의 충돌에서 예수님께 대한 충성심을 택하기 위해 제자가 취해야 하는 조치는 ‘자기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의 이러한 선택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모습으로 묘사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다 하나님 나라의 증인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증거 되도록 의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며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주를 믿는 성도들 외에 다른 방법을 쓰는 일이 없다 하는 것이 오늘 여기 나오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또 41절에 나오는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라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보냄을 받은 제자들을 영접하는 것은 곧 그들을 보내신 예수님 자신을 영접하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자신을 영접하는 것이라는 원리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과 묶어져 있는 교회 즉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충성을 다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며 하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