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2장 1-14절 예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세번째로 혼인잔치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이 혼인잔치 비유는 조금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분명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는 사람들은 모르는 자들이 아니라 상당히 가까운 관계의 사람들일 것이며 청함을 거절하는 자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참석하기를 싫어했고 그것도 모자라 청함을 알리러 온 종들을 잡아 죽이고 능욕합니다. 그러자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동네를 불사르는 지경까지 이르는 우리 일상생활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전개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임금은 청함을 받은 자들이 오기를 거부하자 종들을 보내어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데려다가 자리를 채웠습니다. 그런데 11절에 보는 것 같이 임금이 손님을 보고 들어 오다가 예복 입지 않은 사람을 보고 왜 예복을 입지 않았는가 해서 그의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져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게 했습니다. 이렇게 비유를 마치시면서 결론에 붙이시기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 이렇게 하시면서 비유를 마치십니다. 이 비유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에서 말하는 예복에 관한 문제는 그 앞에 있었던 열매와 같은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진 거부감, 거역한 행위, 하나님의 초청에 대하여 저들이 가졌던 적대적인 행위들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물어봐야 하는 것은 바리새인의 확신의 근거는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이 있어서 당연히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 율법을 지키면 구원받는 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인 구원, 율법을 통해서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것으로 이해 했습니다. 그러나 어제 말씀을 드린 것 처럼 율법과 제사로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서 자신이 죄인이고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외곡된 제사와 행위의 율법으로 인해 구원받는 다는 것으로 착각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꾸중하시는 것입니다. 큰 잔치에 올수 있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께서 초청하시고 부르시고 그곳에 들여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롭게 하신것이요 하나님께서 구원하신것입니다. 예수님만이 메시야 되시며 그분을 영접해야만 하나님의 백성이 될수 있음을 설명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복을 입어야만 하는 것은 이 예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입을수 있다는 것임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는 자는 적다”라고 말하며 구원이 우리쪽에 근거나 조건이 있지 않고 부르신 하나님 쪽에 근거와 조건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그 어떤 조건과 의지와 노력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구원을 얻고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그 어떤 길도 방법도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저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에게 어떠한 조건과 의지와 노력이 있어서 예수님을 믿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혼인 잔치의 비유에 우리는 누구입니까? 초청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거리와 골목에 있던 가난한 사람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이였습니다. 그리고 길과 산울타리에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초청받지 못했지만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저희들의 힘이 아닌 온전히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능력으로 인해 저희들은 구원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격없는 저희들이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초청을 받고 예복을 입게 되어 잔치에 참여 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시고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실히 살아가시는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