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1장 8-12절
베드로는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서신서를 보내어서 그들에게 격려하고 위로를 주며 또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작정하시고 예정하시고 택하신 것이며 하나님께서 사랑과 긍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사는 것을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부나 명예, 안전, 건강 등을 주시기를 원하셨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이유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 가장 기쁘고 즐겁고 복된,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구원이라는 주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의 측면에서 보면 ‘구원의 역사’이고, 성경도 ‘구원의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님에 대해, 신약은 ‘오신’ 예수님에 대해 기록한 것으로, 결국 성경은 구원자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인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를 통해 계속해서 이 구원이라는 주제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1장 1, 2절에서 성도를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하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구속 사역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권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이라는 구속사역이었습니다. 6절에도 8절에도 기쁨이라고 나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이 기쁨, 환난이나 어려움 속에서, 예수님을 보지도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광속에서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구원에 대해 얼마나 크게 기뻐하고 계십니까? 혹시 여러분에게 별로 큰 기쁨이 아니십니까? 구원이 나에게 기쁨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구원에 그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을 잘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구원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내가 잊어버린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이 구원에 대하여는”(10절)으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10-12절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12절) 여기서 말하는 “이것”은 모두 구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앞의 3절에서는 “산소망”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4절에서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 5절에서는 “구원”, 9절에서는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뜻하신 이 구원은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합니다.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을 직접 목격하지 못한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을 말합니다.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예언하게 되었고 그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성취 하실지 메시야의 때에 대해서 간절히 알기를 원했으며 그것을 알기 위해 말씀을 연구하였습니다(눅 10:24). 누가복음 10장 21-2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성령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메시야를 보내시고 구원하신다고는 들었지만 그들은 알지 못하여서 부지런히 살피고 연구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천사들도 알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너무나도 쉽게(?)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구원에 대해 얼마나 감사하고 계십니까? 너무 쉽게 생각하고 그 가치를 잘 깨닫지 못하며 살고 있지는 않나요? 우리는 구약의 많은 성도, 하나님의 약속만 붙잡고 고난의 삶을 살았던 그들이 바라고 기다렸던, 연구하고 답을 얻기 원했던, 그 해답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 사실에 기뻐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주은혜 교회 성도님들, 구원 받은 백성으로서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도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