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3장 1-6 야고보는 야고보는 자신을 포함한 '선생들'이 “더 큰 심판을 받을 줄을 알고 선생이 되지 말라”라고 합니다. 선생이 더 큰 심판을 받는 이유는 2절에 헬라어로 ‘왜냐하면’(가르)이라고 하면서 야고보는 우리 “모두가 많은 것들을 실수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선생에게 더 큰 심판의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로 말로 가르치는 직분의 특성상 말 실수가 더 많기 때문인 것입니다. 말실수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야고보는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에 굴레 씌우리라”고 합니다. 혀를 제어하여 말의 실수가 없게 하는 것은 결국 온몸에 굴레를 씌워 죄 짓는 도구로 이용되지 못하도륵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며 성숙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야고보가 말하는 것은 언어 행위로 말미암아 그의 성숙함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말하며 말은 그 속에 어떤 인격이 살고 있는지 알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은 ‘고작’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중요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말이 얼마나 엄청남 영향력과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해 줍니다. 먼저 말의 긍정적인 영향력을 두 가지를 비유로 설명합니다. 말(Horse)과 큰 배를 움직이려 할 때 기수는 작은 “재갈”을 통해 그리고 사공 역시 “작은 키”를 통해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혀”는 작지만 그 영향력이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반면 혀의 부정적인 그 파괴력 또한 어마어마 하다는 것입니다. 작은 불씨 하나가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지 여러분과 저는 요세미티와 여러 지역에서 눈으로 직접 경험을 하였습니다. 혀는 불과 같이 모든 것을 태워 버릴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모든 악들과 연관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범죄케 한다는 의미로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라고 합니다. 또한 각자가 자신의 혀의 힘을 제어하는 데에 실패한다면, 급기야 완전한 파멸에 이르는 것을 피할 수 없음을 경고하며 파멸할 수 밖에 없는 것은 혀의 오용과 남용이 사단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고 설명합니다. 성경은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7)라고 했고,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고 했습니다. 이 명령의 말씀들이 단지 특별한 교사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전하는 사명을 가진 모든 성도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선생들만이 아닌 성도의 말 한마디에 엄청난 영향력과 파괴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 없이 내뱉은 즉흥적인 말 한마디가 교회 전체를 불사르는 고통에 빠지게도 할 수 있음을 생각하고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의 실수가 없도록 더욱더 노력하며 살아 가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혀에 재갈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감사와 찬양과 사랑의 말을 전하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